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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술,이론

[이론] 아리고 사키, 3백의 몰락, 현대 축구의 시작

※ 먼저 이글은 네이버블로그 (이름난개장수)님의 글을 복사하여 등록하였습니다.

해당 블로그로 이동하시면 정말 좋은글들이 많으니, 가셔서 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wakano4/)

 

아리고 사키

 

 

아리고 사키 감독은 강력한 존 프레스를 바탕으로 밀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감독이다. 물론 그가 주장했던 일련의 전술 철학들, 사키이즘은 후대의 여러 감독들에 의해 모방되어 사용되고 있다. 아리고 사키는 현재의 축구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남긴 감독을 묻는 질문에 그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지나친 자만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토탈 풋볼에서부터 현대 축구가 태동하여 아리고 사키 때부터 현대 축구의 구체적인 형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80년대 이탈리아는 60년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카테나치오의 전통적인 수비 위주의 전술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며 표류하고 있었다. 신발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5부 리그 아마추어 선수로 뛰었던 무명의 아리고 사키 감독은 젊은 시절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에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리고 사키는 82년 이탈리아 3부리그 리미니에서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파르마를 2부 리그로 승격시킨 후, 87년에는 밀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사키는 수비 위주의 축구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그는 공격 축구를 펼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사키는 나폴리에서 뛰던 마라도나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렸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마라도나와 대립할 수 있는 축구를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사키는 "마라도나가 있었기 때문에 존 프레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디에고 마라도나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에게 맞서기 위해선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카테나치오만으로는 마라도나를 봉쇄할 수 없었다. 이유인 즉, 10명의 수비를 굳혀도 마라도나는 그 모든 수비를 제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혁명이라 불리우는 변화가 일어난 배경이 되었다.

 

마라도나처럼 드리블에 능한 선수는 스토퍼와 스위퍼를 거침없이 돌파할 수 있다.

 

사키는 토탈 풋볼을 어떻게 하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젊은 시절에 본 네덜란드 팀이 경기하던 모습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앞으로 나아가며 상대를 압박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혁신적이었다. 토탈 풋볼은 공격 축구이고, 압박 축구이며, 미래의 축구였던 셈이다. 반면 이탈리아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두고 볼 수 없었고, 잘못된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사키는 미헬스 감독 이후로 토탈 풋볼의 계승자들이 끊임없이 던져 온 "어떻게 하면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볼 주변의 공간에 수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팀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상대 선수를 더욱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사키는 공격, 미드필드, 수비 라인에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고르게 포진되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사키는 결국 미드필더를 일렬로 배치하는 4-4-2 포메이션을 만들어내게 된다. 4-4-2 포메이션은 위의 질문들에 대한 사키의 대답인 셈이다.

 

갈리 / 말디니 - 코스타쿠르타 - 바레시 - 타소티 / 콜롬보 - 안첼로티 - 레이카르트 - 도나도니 / 반 바스텐 - 굴리트

 

 4-4-2 포메이션이 어떻게 토탈 풋볼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는지 조금만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4-4-2 포메이션은 4-3-3 포메이션에 비해 공간 분할이 완벽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해당 글 먼저 참고 ▲출처 : http://blog.naver.com/wakano4/90153276170

 

 

보는 것처럼 4-4-2 포메이션에서는 수비수들이 공격에 가담할 때 미드필더나 공격수가 커버해줘야 할 공간, 반대로 공격수들이 수비수의 역할을 수행할 때 수비수나 미드필더가 파고들어야 할 공간이 매우 명확하며 이는 곧 훨씬 더 체계적으로 토탈 풋볼이 구사된다는 의미다. 그에따라 미헬스의 토탈 풋볼에서 방향 표시등 역할을 했던 크루이프같은 선수가 없어도 선수들은 언제 뛰어야 하는지,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 왜 뛰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미헬스의 토탈 풋볼은 월드 클래스 선수가 7명 이상있어야 구사할 수 있지만, 사키의 압박 축구는 사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베를루스코니 회장이 직접 뛰어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키는 "공격시에는 플레이를 독점하고, 수비시에는 공간을 컨트롤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비시 공간을 컨트롤한다는 개념은 지역 방어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에 토탈 풋볼의 이론을 더하면 존 프레스의 개념이 나온다. 또한 마라도나라는 뛰어난 재능의 선수를 막기 위한 논리도 나오는데, 1:1 대인 방어를 하기엔 능력이 부족하다 -> 공간에 대한 지배력이 약하다 -> 공간에 대한 지배력을 높혀야 한다 -> 간격을 좁혀 지배력을 높힌다 -> 압박과 협력 수비가 가능해진다는 논리 구조다.

 

즉, 기존의 전술에선 협력 수비를 하려면 선수 배치의 불균형을 전제해야 했지만, 사키이즘에서는 선수의 간격을 좁힘으로써 협력 수비를 하게 된다.

 

사키이즘에서는 대형을 유지한 상태로 선수간의 간격을 좁힘으로써 협력 수비를 한다.

 

 

결과적으로 4-4-2 포메이션은 조직적, 체계적인 압박을 극대화시킨 포메이션이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압박의 유무가 바로 현대 축구와 고전 축구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는 셈이다. 사키이즘은 훈련을 통해 경기 중에 동료 선수간의 좁은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연습이 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토탈 풋볼이었고, 이것은 잠시 주류로부터 이탈해 있던 토탈 풋볼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키이즘의 핵심은 선수간의 좁은 간격 유지로 정의할 수 있으며, 때문에 사키의 전술은 컴팩트 풋볼로 불린다.

 

80년대 후반 당시에는 조나 미스타, 4-3-1-2, 3-5-2, 3-4-1-2, 4-2-2-2 등등 상당수의 전술이 10번 플레이 메이커에게 볼을 집중하는 형태였다. "나의 압박 축구는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사키의 말처럼 사키이즘의 등장은 고전 축구의 산물이었던 전담 플레이 메이커 체계의 붕괴를 가져왔다.

 

 

2. 3백의 몰락

 

80년대 후반부터 전술적 흐름은 4-4-2 포메이션과 3-5-2 포메이션의 대결 구도로 압축된다. 이 양상은 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는데, 결국 승리를 차지한 쪽은 3-5-2 포메이션이 아닌 4-4-2 포메이션이었다. 강한 압박이 중요시되는 현대 축구의 흐름 속에서 리베로를 최후방에 배치하는 3-5-2 포메이션은 오프사이드 트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최종 수비 라인을 끌어 올릴 수 없다는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그에따라 3-5-2 포메이션에 수정이 가해졌다.

 

적극적인 전진이 가능한 플랫형 쓰리백

플랫형 쓰리백으로 변화한 3백은 3-4-3 포메이션 등으로 활용되어 졌다. 3-4-3 포메이션은 상대를 빠르게 압박한 후 측면을 통해 공격한다는 것을 목표로 했고 우디네세를 감독했던 자케로니 감독 등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현대 축구의 흐름에 맞춰 개량된 3백에도 해결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3백이 센터 포워드를 한 명만 사용하는 전술에 태생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미드필드 싸움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됐고, 그로 인해 4-4-2 포메이션을 대신하여 4-5-1, 4-2-3-1 포메이션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는 4-4-2 포메이션에서 공격수의 숫자를 한 명 줄이고 미드필더 숫자를 늘림으로써 미드필드 장악력을 최대한으로 높인 전술이었다. 이와 함께 4-3-3 포메이션도 다시금 활용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는데, 현대 축구의 4-3-3 포메이션은 대부분 4-5-1 포메이션과 혼용되는 모습을 나타내며 1970년대의 4-3-3 포메이션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모습이다. 4-4-2 포메이션을 활용하는 팀들도 공격수들이 번갈아가며 미드필드 싸움에 가담하여 중원에서 열세에 놓이지 않기 위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다수의 팀들이 센터 포워드를 한명만 놓게 되면서 3-5-2 포메이션을 고집하던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1994년, 1998년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둬야 했다.

 

2007년 코린티아스를 맡은 브라질 출신 넬싱요 밥티스타 감독은 하나의 시스템이 다른 시스템을 만났을 때 가지는 약점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3-5-2를 쓰던 A팀이 4-5-1에서 4-3-3으로 변화하는 시스템을 가진 B팀을 만났다고 가정해 보죠. A팀의 윙백들이 B팀의 윙어와 맞서게 되겠죠. 이건 A팀이 세 명의 포워드를 상대하기 위해 5명의 수비를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미드필더 지역에서는 A팀이 가진 3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상대팀의 세 명을 상대하게 됩니다. 그러니 3-5-2가 4-4-2에게 가지는 이점이 사라지게 되죠. 그럼 남는 건 상대팀 네 명의 수비수를 상대하는 A팀 두 명의 포워드입니다. 중요한 건 상대팀에 남는 수비수가 풀백이라는 거에요. 한명을 남겨 수비에서 3 대 2의 우위를 유지한 채 나머지 하나의 풀백이 미드필더로 전진해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B팀이 점유율을 가져가게 되고, 좌우 폭도 넓게 쓸 수 있죠."라는게 밥티스타 감독의 설명이다.

 

 

 

3백은 기본적으로 2명의 스토퍼가 상대 센터 포워드를 막고, 남는 한 명이 뒤에서 스위핑을 한다. 만약 막을 센터 포워드가 한 명 밖에 없다면, 수비에서는 두 명이 남아버리고 이는 피치의 다른 곳에서 숫자가 부족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런 3백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원 톱을 주로 사용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3백이 몰락해버리고 말았다.

 

 

3. 현대 축구의 시작

 

90년 월드컵부터 압박은 매우 중요한 전술적 테마가 되었다. 경기는 빨라졌고, 중원 싸움이 승부를 좌우하기 시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막기 위해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 대두되었고, 빠른 전환을 위해 낮은 위치에서 빌드업을 담당하는 과르디올라나 피를로같은 유형의 선수들이 레지스타나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주목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형태의 전술과 포메이션이 사용됨과 동시에 정보화가 진행되어 이제는 74년 월드컵처럼 상대 팀이 토탈 풋볼을 구사한다는 정보가 없어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기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상대팀의 전술이 무엇이고 주요 선수들이 특징이 무엇인지 경기 전에 알게되는 까닭에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졌다.

 

특정 포메이션이나 정해진 틀에 집착하지 않고 무슨 전술을 사용하든지에 관계없이 강한 압박, 빠른 공수전환, 미드필드에서의 주도권 장악 등에 초점을 맞추어지며, 경기 상황이나 스코어에 맞게 전술운용에 변화를 주는 융통성과 유연함도 중요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