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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술,이론

[이론] 전술의 발전 - 공간론②

※ 먼저 이글은 네이버블로그 (이름난개장수)님의 글을 복사하여 등록하였습니다.

해당 블로그로 이동하시면 정말 좋은글들이 많으니, 가셔서 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wakano4/)

 

공간론적 위치가 선수들의 대략적인 역할과 요구되는 능력을 결정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우리는 특정 포메이션이 가지는 기본적인 특성과 장단점, 상성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우리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충실히 따르는 전술을 프로토타입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물론 실제 축구 경기에서 프로토타입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전술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던 08/09시즌 바르셀로나의 경우 이니에스타 - 사비 / 부스케츠의 조합에서 사비의 피지컬이 프로토타입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 또한 4-2-3-1 포메이션을 사용했던 11/12시즌 레알의 경우 외질 / 알론소 - 케디라의 조합에서 케디라의 전진이 많은 편이며, 측면 포워드인 호날두가 아래로 내려와서 적극적으로 압박에 가담하는 경우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선수 구성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프로토타입이 아닌 변형된 전술을 사용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전술적인 목적상 바르셀로나에는 피지컬이 강한 중앙 미드필더보다는 볼을 잘 다루면서 정확한 패스를 할 수 있는 중앙 미드필더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레알은 수비시 호날두를 아래쪽으로 내려 압박에 가담하게 하는 것보다 여전히 위쪽에 놓아 역습에 활용하는 것이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팀내에 공격형 풀백이 부재하여 어쩔 수 없이 수비적인 풀백을 기용한다거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가 있어 그 선수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등등 스쿼드상의 이유일 수도 있다. 변형은 주로 스쿼드라는 현실 요건과 전술적인 목적 요건에 의해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레알의 주전 센터 포워드를 벤제마에서 이과인으로 교체한다고 가정해보자. 많은 축구팬들이 하나의 변수를 독립적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과인이 벤제마를 대체한다는 사실만을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과인은 벤제마와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타겟맨에 가까운 이과인의 성향상 디 마리아의 선발 출장이 훨씬 많아질 것이며 카예혼은 자연스럽게 디 마리아의 교체 멤버가 될 것이다. 또한 호날두와 자주 자리를 바꿔주는 벤제마와는 달리 이과인과 호날두의 조합에서는 스위칭 플레이가 줄어들게 되어 호날두의 움직임이 달라져야 한다. 호날두의 움직임이 달라지면 외질과 알론소, 마르셀로의 움직임도 달라져야 한다.

 

대부분의 팀들이 토탈 풋볼이라는 경기 운영 방식을 사용하는 현대 축구에서는 하나의 변수가 전체에 영향을 주며 특히 가까이 위치한 선수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때문에 전술에 있어서 변형이란 하나의 직소 퍼즐과도 같은 성격을 갖게되는 것이다. 감독은 이러한 퍼즐을 풀면서 인접한 선수 사이의 불협화음이 최소화되고 서로간의 호응이 최대화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 더글라스 마이콘을 시작으로 다니엘 알베스, 호르디 알바와 같은 공격형 풀백의 몸값이 많이 올라갔다. 어떤 기사에서 그 이유를 분석하면서 풀백의 오버래핑이 제공하는 효용성이 크다는 식으로 근거를 들었지만 필자는 그런 류의 설명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내용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접근 방법은 부차적인 설명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풀백의 오버래핑이 제공하는 효용성은 예전에도 컸다. 근래에 공격형 풀백의 몸값이 올라간 가장 큰 이유는 강팀들이 4-4-2 포메이션이 아닌 4-3-3 이나 4-2-3-1 포메이션을 위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풀백들이 기존보다 전진된 공간에서 수비를 시작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때문에 오버래핑을 통한 전진이 더욱 용이해졌다는 것이다. 이런식의 사고가 공간 축구를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왜 4-3-3 포메이션이나 4-2-3-1 포메이션은 4-4-2 포메이션보다 풀백이 더욱 전진하여 수비를 시작해야 하는가?

 

 

 

4-4-2 포메이션의 윙어와는 다르게 4-2-3-1 포메이션의 윙어는 기존보다 전진된 공간에서 활동할 것을 요구받는다. 특히 4-3-3 포메이션에서는 측면 포워드가 매우 전진된 공간에서 활동한다. 생각해보자. 첫번째 그림에서 두번째 그림처럼 윙어만을 전진 배치한다면 노란색으로 표시한 공간에 대한 영향력을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선수들간의 좁은 폭을 유지하는 것을 주문하는 사키이즘에도 반하는 것이며, 공간론적으로도 이 공간을 통한 역습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세번째 그림처럼 풀백을 전진시키거나 중앙 미드필더를 조금더 측면쪽으로 배치해야 한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네번째 그림과 같은 포메이션이 된다. 알다시피 이 포메이션은 6+3+1 구조를 가진다. 만약 후자를 선택한다면 피를로 - 마르키시오같은 선수 조합을 사용하는 변형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6+3+1 구조를 가지는 4-2-3-1 포메이션을 프로토타입이라 보고 역습의 위력을 최대화하려는 전술적인 목적하에 왼쪽 측면 윙어인 호날두를 훨씬 더 전진된 위치에 배정한다고 생각해보자.

 

 

첫번째 그림은 4-2-3-1 포메이션의 프로토타입을 뜻한다. 여기서 전술적인 목적상 호날두를 훨씬 더 전진된 위치에 배치하고 수비시에도 내려오지 않게끔 지시한다. 두번째 그림은 그로인해 발생하는 취약 공간이다. 세번째 그림은 취약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마르셀루를 전진시킨 것이다. 네번째 그림은 마르셀루가 비워둔 아래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알론소를 아래로 내리고 라모스를 조금 더 측면으로 배치한 것이다. 결국 다섯번째 그림이 레알의 실질적 포메이션이 된다. 형식적 포메이션은 4-2-3-1 포메이션이지만 실제로는 정형화된 이름을 부르기 어려운 모습이다. 레알은 이런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여섯번째 그림과 같은 전술 운용을 하고 있다.

 

이렇게 수비시 호날두가 내려오지 않는 전술적 변화는 다른 선수들의 연쇄적인 변화를 낳게된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선수들에게 특정한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 역습 능력과 결정력이 뛰어난 호날두, 공격적 재능을 가진 마르셀루, 거의 전진하지 않고 후방에 남아 커버링을 하는 알론소,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라모스라는 전술의 요구에 호응하는 선수들의 존재가 무링요 감독이 이런 변형된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이제 공간론적으로 축구를 봐야한다. 경기를 보면서 특정 선수의 포지션이 어디인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어떤 능력이 요구되는지, 왜 그 선수를 선택했는지, 왜 그러한 전술을 사용하는지에 대하여 감독의 의중을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로 축구를 보는 것이며 그렇게 축구를 보는 팬만이 생산적인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여러차례 강조하는 것이지만 실질적 포메이션과 선수의 움직임 그리고 선수의 능력을 일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앞서 우리는 알레그리의 논문을 통해 포메이션의 변화에 따른 생각, 레알을 예로 들어 선수의 움직임에 따라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2012/13시즌 첼시의 예를 들어 선수의 능력을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자.

 

필자는 첼시의 시즌 전반기 전술 변화가 크게 3번 있었다고 생각한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체계에서 2가지 종류의 4-2-3-1 포메이션이 사용됐고,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 체계에서 다른 1종류의 4-2-3-1 포메이션이 사용됐다. 물론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앞으로 계속 4-2-3-1 포메이션을 유지할지 아니면 4-3-3 포메이션으로 변화할지에 대해 필자는 확실하게 예상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동일한 포메이션이라 하더라도 전술이 바뀌면서 중앙 미드필더의 조합이 두드러지게 바뀌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우선 중앙 미드필더들의 특성을 간략히 살펴보면 프랭크 램퍼드는 창의적이고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며 강한 중거리 슛으로 많은 득점을 잡아낸다. 쉽게 지치는 법이 없지만 스피드는 느리다. 존 오비 미켈은 몸싸움이 뛰어나며 타점 높은 헤딩이 가능하다. 수비력은 좋지만 램퍼드와 마찬가지로 스피드가 느리다. 하미레즈는 다방면에 있어 다재다능하며 많은 활동량을 보이지만 확실한 강점은 없다. 마지막으로 본래 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고 있는 다비드 루이스는 훌륭한 수비력과 좋은 킥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넓은 활동 반경을 자랑하지만 가끔은 큰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첫번째 전술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램퍼드 - 미켈이었다. 디 마테오는 11/12시즌 램퍼드 - 미켈 조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챔스를 우승하기도 했다. 램퍼드와 미켈은 모두 포백 바로 앞의 공간에서 묵직하게 움직이면서 수비적인 측면에서 굉장한 기여를 했는데 이런 수비적인 전술에서는 둘의 장점이 십분 활용될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 뮌헨을 상대로는 4-2-3-1 포메이션을 사용했고, 4강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는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는데 극도로 수비적인 형태였기 때문에 미켈과 램퍼드는 포백 앞에서 수비를 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나 12/13시즌에 오면서 이러한 배치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1/12시즌 첼시가 챔스에서 상대했던 바르셀로나와 뮌헨은 챔스 리그 평균 점유율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포제션 풋볼을 구사하던 클럽이다. 그에 맞서 첼시는 두번째 그림처럼 풀백의 오버래핑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페널티 박스 앞쪽에 벽을 구축하여 실점을 억제했다. 또한 공격은 세번째 그림처럼 디디에 드로그바를 겨냥한 램퍼드의 패스를 기본 골격으로 했다.

12/13시즌으로 넘어와서 첼시는 지공을 해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시즌 초반 5경기는 아자드의 개인 능력으로 잘 풀어나갔으나 곧 협력 수비에 막히기 시작하면서 첼시는 풀백을 전진시키지 않으면 공격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다. 풀백의 전진은 네번째 그림처럼 램퍼드나 미켈이 커버해야할 공간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스피드 경합을 해야하는 경우가 잦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슈퍼컵에서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보여준 모습을 보면 다섯번째 그림처럼 에쉴리 콜과 이바노비치가 오버래핑하면서 비워둔 공간에 통한 역습을 막는데 너무나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램퍼드와 미켈은 모두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에 측면 커버링 플레이가 미흡하다는 사실에서 램퍼드와 미켈 조합은 풀백이 오버래핑을 자제하는 역습 위주의 전술에서는 적합하지만 다수가 전진하여 지공을 펼쳐야하는 전술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두번째 전술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하미레즈 - 미켈이었다. 필자는 미켈 - 하미레즈로 배치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어쨌든 디 마테오는 하미레즈를 램퍼드 대신에 기용하여 측면에 대한 커버링 플레이가 원활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의 첼시 경기에서 측면 커버링 플레이만 떼어놓고 보자면 확실히 더 나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첫번째 그림처럼 많은 활동량을 통해 팀에 헌신하는 하미레즈는 측면 커버링에 있어서는 램퍼드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공격이 기존보다 훨씬 안풀리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승률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그것은 4-2-3-1 포메이션에서 2에 해당하는 선수 중 한 명은 레지스타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하미레즈나 미켈은 그러한 창의적인 패스를 구사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미켈은 짧은 패스에서는 높은 정확성을 보장하지만 피를로나 알론소가 보여주는 창의적인 패스를 구사하는 선수는 아니다. 두번째 그림과 같은 진형에서 위쪽 5명의 움직임을 더욱 유의미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적어도 한 명은 창의적인 패스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네번째 그림에 표시한 공간에서 짧은 패스만 자주 활용되면서 전체적으로 역습이 잘 이뤄지지 않고, 공격형 미드필더들은 백패스와 드리블 돌파같은 플레이를 위주로 하게된다. 다섯번째 그림처럼 지루하게 이어진 짧은 패스가 차단되어 역습을 맞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시기에 미켈은 토레스를 겨냥한 롱 패스도 자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토레스가 그런 패스를 잘 잡아주지 못하면서 공격 전개가 단순해지고 결국 팀 전체가 부진하게 됐다. 첼시는 중국 무대로 적을 옮긴 드로그바의 존재가 많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디 마테오 감독은 폴스 나인과같은 첼시에 어울리않는 전술을 사용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경질되게 된다.

 

여기서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반드시 하고 넘어가자. 필자는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는 방법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여기서는 4-2-3-1 포메이션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전제하고 중앙 미드필더들의 조합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두 번의 실패 사례를 분석해보면 새로운 조합은 측면에 대한 커버링이 원활해야 한다와 창의적인 패스가 가능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디 마테오에게서 감독직을 넘겨받은 베니테즈는 램퍼드와 루이즈의 조합을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그림처럼 램퍼드 - 루이스 조합을 활용한다면 프레싱 바소 상황에서 역습을 시도할 때 두번째 그림처럼 램퍼드의 롱 패스를 활용할 수 있다. 속공이 아닌 지공 상황에서는 적절한 진형 변경을 통해 네번째 그림처럼 다수를 전진시키거나 다섯번째 그림처럼 루이스의 커버링 플레이를 통해 풀백을 과감히 전진시키는 옵션도 가능하다. 만약 패싱 플레이를 통해 공간을 만들기 여의치 않다면 루이스에게 볼을 건네주고 중거리 슛으로 공격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실제로도 이 조합을 사용했던 때에는 루이스의 중거리 슈팅이 상당히 많았다.

 

하나의 조합을 더 생각해보자. 루이스 - 하미레즈다. 이것은 물론 창의적인 패스가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충족시키는 조합은 아니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스테미너가 대단히 뛰어나며 공격형 미드필더 라인에 있는 선수들과의 연계 작업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그림처럼 미드필드에 배치한 5명의 선수, 아자르 - 마타 - 모세스 / 루이스 - 하미레즈를 통해 중원을 완전히 장악하여 짧은 패스의 공격 축구를 펼치겠다는 구상을 할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의 베니테즈 감독으로서는 적극적으로 고려해봄직한 방안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라인에 아자르, 마타, 모세스뿐만 아니라 그들의 대체 자원인 오스카와 마린까지도 적당한 훈련을 통하여 빠른 포어체킹을 구사하기에 충분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며 아래쪽 공간의 에쉴리 콜, 루이스, 하미레즈, 탄코는 빠른 압박을 펼치기에 최적화된 선수들이다. 베니테즈 감독에게 어느 정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뛰어난 압박을 바탕으로하는 패싱 게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센터백 두 명 바로 앞에 배치된 선수들이 네번째 그림처럼 모두 공격적으로 전진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미켈이나 상황 판단 능력이 좋은 램퍼드가 있을 때와는 달리 그들이 없었던 2013년 1월 10일 스완지와의 경기에서는 이바노비치가 공을 잡았을 때 바로 앞쪽에 있는 선수들이 볼을 받아주려는 움직임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경기의 패인으로 이바노비치의 커다란 두 개의 실수를 지적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전술을 살펴봤을 때 스완지 공격수들에게 이바노비치가 공략당하기 쉽게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공격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에는 아직 정교함이 부족했다. 향후 베니테즈 감독이 어떤 전술적인 지도력을 보여줄지 기대해보자.

 

이번에는 플레이 메이커의 유형에 대해서 알아보자. 전통적으로 플레이 메이커라는 용어는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지만 현재는 후방 플레이 메이커라는 용어처럼 특정한 수비형 미드필더를 플레이 메이커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래에 후방 플레이 메이커가 주목받는 이유를 필자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보는데 하나는 전환 이론과 효과적인 빌드 업을 활용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하여 수비 라인 바로 앞 센터 공간을 틀어막으려는 팀들을 상대로 전통적인 의미의 플레이 메이커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첫번째 그림은 플레이 메이커를 예시한 것이다. 두번째 그림에서 보다시피 상대 골대에 가까울수록 상대의 압박은 강하다. 예를 들어 지단과 스콜스가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를 선보이더라도 대체로 지단의 플레이가 스콜스의 플레이보다 훨씬 어려운 종류의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세번째 그림과 네번째 그림처럼 감독들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패스의 종류나 수비 가담 정도가 다르다. 이것은 선수의 위치가 선수의 플레이를 결정한다는 공간론적 이해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물론 선수마다 특성의 차이는 있다. 외질의 경우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인스텝, 아웃프론트, 힐, 로빙, 그라운드 패스 등등 다양한 종류의 패스를 구사하며 빠른 스피드를 활용하여 역습에서도 위력을 발휘하지만 슈팅이 아쉽다. 반면 지단은 속도가 느리고 활동량이 제한적이지만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할 거의 모든 능력을 마스터한 느낌의 선수다. 뛰어난 개인기, 키핑력, 슈팅력, 돌파력, 패싱력 등등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지단에게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스테미너까지 있었다면 축구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스콜스는 강력한 슈팅과 준수한 수비력, 링크 업 플레이에서 뛰어나지만 킬 패스 능력은 약했으며 깔끔하지 못한 태클과 소심한 성격으로 어이없이 퇴장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 사비는 수비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많은 패스를 연결시키며 뛰어난 키핑력과 정확한 패스를 자랑한다. 피를로와 알론소는 모두 중장거리 패스와 프리킥에 능한데 수비 스타일에서 피를로가 지능적이라면 알론소는 터프한 편이다.

 

이렇게 공간론적 위치와 선수의 특징에 따라 플레이 메이커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면 다른 포지션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선수의 위치와 역할, 특징에 따라 이탈리아에서만도 프리마 푼타, 세콘다 푼타, 판타지스타, 트레콰르티스타, 레지스타, 벨로치스타, 플루이디피칸테, 인테르디토레, 쿠르쏘레, 인쿠르쏘레, 우니베르쌀레, 메디아노, 메짤라, 피우토, 아티피코, 사크리피치오, 콘크레테짜, 반디에라 등등 수많은 용어가 있다. 우리의 목적은 감독이 어떤 유형의 선수를 전술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 아는 것과 역으로 감독이 어떤 전술을 사용할 때 어떤 선수가 적합할지 추론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용어의 의미를 알고 대표하는 선수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아르센 벵거 감독이 4-4-2 포메이션을 사용할 때 상대의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 라인 사이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없다는 구조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아웃사이드 윙어를 인사이드 공간으로 침투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윙어들이 더 이상 클래식한 직선적인 움직임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인사이드 포워드나 플레이 메이커와 같은 플레이를 펼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윙어의 유형을 여러가지 종류로 구분해보자.

 

 

첫번째 그림처럼 직선적인 움직임과 크로스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를 클래식 윙어나 아웃사이드 윙어라하며 발렌시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두번째 그림부터는 전통적인 윙어라고 보기에는 다른 구석들이 있는 선수들을 나열했다. 두번째 그림은 측면 플레이도 많지만 인사이드 공간으로 침투해서 짧은 패스를 연결해주는 플레이도 자주하는 유형이다. 세번째 그림은 기본적으로는 측면 윙어와 같은 플레이를 하지만 자주 중앙으로 침투하여 중거리슛을 쏘는 유형이다. 네번째 그림은 측면에서 머물기보다는 안쪽으로 돌파하거나 침투하여 슈팅을 가져가는 유형이다. 다섯번째 유형은 오른쪽에 배치됐지만 왼발을 잘쓰는 인사이드 커터로 멀리서 반대편 포스트를 향해 크로스를 하거나 직접 돌파하여 슈팅을 노리는 유형이다. 여섯번째 유형은 측면에 배치됐지만 크로스는 거의 하지 않고 안쪽으로 드리블하여 슈팅이나 플레이 메이킹을 하는 유형이다. 각각의 유형을 대표하는 선수들의 예시를 보면 역시나 선수들의 능력과 움직임이 일정한 호응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있다.

 

물론 호응관계를 한 선수에 국한하여 생각하면 안된다. 현대 축구는 토탈 풋볼이라는 운영 원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미 강조했다시피 가까이 위치한 선수들의 호응관계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조세 무링요 감독이 첼시를 맡은 04/05시즌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첼시는 거금을 들여 디디에 드로그바와 아르옌 로벤을 영입했다. 선수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드로그바는 높이와 몸싸움을 통해 공중볼을 따내는데 매우 능하고,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민첩하여 피지컬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였다. 로벤은 100m를 10초대에 뛸 정도로 굉장히 빠르며 왼발을 잘 쓰고 드리블과 패스등 기술적인 능력도 뛰어난 선수였다.

 

 

 

공간론적 사고를 해보자. 첫번째 그림처럼 왼발을 잘 쓰는 윙어를 좌측에 배치하여 드리블을 통해 공격을 전개한다면 곧바로 빠르고 정확한 크로스를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측면 공간의 활용이 극대화되어 결국 공격력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왼발을 잘 쓰는 윙어를 우측에 배치한다면 드리블을 통해 공격을 전개한 이후에 곧바로 빠르고 정확한 크로스를 구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정교한 아웃프론트 킥을 구사하는 소수의 선수를 제외한다면 빠르게 올릴 때는 정확성을 포기해야하고, 정확도를 확보하려면 준비 동작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측면 공간의 활용도가 줄어드는 것이며 결국 공격력이 약화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공간 이론가들은 드로그바의 공중볼 능력을 활용하기 위하여 로벤을 좌측에 배치하여 빠르게 측면을 돌파하고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는 전형적인 윙어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링요는 로벤을 오른쪽에 배치하여 인사이드 커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두고 공간 이론가들은 무링요가 축구의 기본 전술도 모르는 무지한 감독이라며 많은 비난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이 찬사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링요는 드로그바의 헤딩 능력은 첫번째 그림의 1번 선택지처럼 데미안 더프나 조 콜이 아웃 사이드 공간을 이용하여 활용하게하고 로벤은 2번 선택지처럼 인 사이드 공간으로 침투하여 직접 득점을 노리는 것을 기본 패턴으로 했다. 두번째 그림처럼 로벤을 마크하는 수비수가 한 명 이하인 상태에서는 드로그바가 압도적인 피지컬 능력으로 수비수들을 몰고다니는 사이 로벤이 자신의 주무기인 기술적인 드리블 돌파를 통해 득점 찬스를 만든다. 만약 센터백이 로벤을 막으러 온다면 세번째 그림처럼 드로그바에게 패스를 연결하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막으러 온다면 네번째 그림처럼 램퍼드에게 패스를 연결한다. (물론 이 시기에는 아이두르 구드욘센이 램퍼드 자리에 있었다.) 즉 로벤을 오른쪽에 배치한다면 로벤이 드리블 돌파를 통해 슈팅을 하거나 혹은 상대 수비수들을 측면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전술을 바탕으로 04/05 시즌 첼시는 29승 8무 1패 72득점 15실점으로 리그를 마무리하며 잉글랜드 무대를 완전히 정복했다.

 

무링요 감독의 특이한 로벤 활용 방식은 고속 드리블을 통한 볼의 운반과 인사이드 커터를 통한 인사이드 공간의 활용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것은 현대 축구에서는 한 선수의 개인 능력에 의해 전환의 속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전환을 통해 전환의 속도가 결정된다는 사키의 주장에 반기를 든 것이며, 동시에 윙어를 통한 아웃사이드 공간의 활용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공간 이론가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러한 무링요의 인사이드 커터 기용은 유럽 클럽 감독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으며 지금은 측면 공간을 주로 활용하는 클래식한 윙어를 찾아보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지경이다.

 

이것을 오해하는데 필자는 측면 공간을 경시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베니테즈 감독은 공격력이 강하려면 중앙 공격과 측면 공격, 세트피스가 모두 강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무링요 감독 또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는 열쇠는 좌우 측면 전환을 빈번하게 시도하는 빠른 측면 공격이다"라고 말했다. 그 방증으로 여전히 온 더 볼 상황에서의 득점 중 절반 이상은 측면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다. 필자가 말하는 바는 UEFA TSG 위원장 앤디 록스버그가 밝힌 것처럼 "측면 공격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측면이라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측면 공간은 더 이상 윙어만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풀백의 오버래핑이나 중앙 미드필더의 측면 침투, 센터 포워드의 리포지셔닝같은 플레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활용되어진다.

 

비단 측면 포워드만이 아니다. 측면 포워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서 측면이 중요한 것처럼 센터 포워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득점을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센터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점을 억제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특수한 형태의 선수 배치에 대해 생각해보자. 필자 또한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경기를 보면서 의문을 갖고는 한다. 특히나 11/12시즌 뮌헨 대 첼시 챔스 결승전과 유로2012 포르투갈 대 네덜란드 조별리그전을 보면서 아주 큰 의문이 드는 선수 배치를 발견했다. 뮌헨은 80분 이후 리베리와 로벤이 모두 왼쪽에 배치했으며, 포르투갈은 공격이 안 풀릴때마다 호날두와 나니를 모두 오른쪽에 배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의 차이는 있지만 두 팀 모두 측면 플레이를 공격의 중심으로 삼았던 팀들이다. 물론 06/07 시즌 맨유가 좌우 윙어들이 위치를 서로 바꾸는 스위칭 플레이를 활용한 이후로 한 쪽에 있던 윙어가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겨 플레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한 쪽은 비워둔 상태로 몇분간 두 명의 윙어들과 한 명의 풀백, 총 세명의 선수가 한 쪽 측면만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플레이는 기존에는 자주 볼 수는 없었던 형태였다.

 

 

첫번째 그림은 로벤과 리베리가 모두 왼쪽에 배치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뮌헨은 이러한 배치에서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토마스 뮐러가 헤딩으로 연결하여 득점에 성공했다. 이것은 로벤과 리베리를 통해 측면 공간에서 수적 우위를 만들고 그 우위를 바탕으로 양질의 크로스를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배치일 때 뮐러가 오른쪽으로 많이 돌아가는 움직이는 보였는데 마리오 고메즈와 뮐러 모두 뛰어난 헤딩 능력을 갖춘 선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포르투갈의 방식은 조금 더 직접적이다. 젊은 감독다운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파울루 벤투 감독은 공격이 안풀릴 때 한 쪽의 측면 공격에 집중하는 형태를 선보였는데 안쪽으로 침투하는 플레이를 주로하는 호날두와 안쪽과 바깥쪽을 모두 이용하는 나니를 조합하여 멋진 역습 플레이를 만들어냈다. 물론 두 명의 윙어를 모두 한 쪽에 배치하는 형태가 비어있는 다른 쪽 측면을 통한 상대의 역습에 쉽게 노출되는 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지만 윙어 활용에 있어서 최적화된 배치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기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한 쪽을 비우고 다른 쪽에 집중하여 전체 공격을 강화한다는 발상은 '가짜 9번'이라 번역되는 폴스 나인 전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폴스 나인은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받고 있는 현재의 바르셀로나에서 사용되는 전술이다. 물론 이것을 과르디올라나 빌라노바 개인의 창작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큰 영향을 미친 크루이프이즘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광인'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은 10년은 먼저 2002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이끌면서 현재의 바르셀로나와 거의 흡사한 공격을 구사했었다. 실제로 비엘사는 왜 이러한 전술을 사용해야하는지 이유까지도 정확하게 제시했으며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발전시켜나가야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사실 비엘사는 3-3-3-1 포메이션같은 크루이프의 창조물이라고 여겨졌던 전술들을 거의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내서 사용했던 감독이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가장 창조적인 감독으로 비엘사 감독을 꼽는걸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는 폴스 나인, 톱리스, 제로톱 등등 비슷한 유형의 전술들을 묶어서 제로톱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94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의 알베르토 페레이라 감독은 2003년 한 축구 강연회에서 "4-6-0 전술이 미래축구를 지배할 것"이라 말했다. 그 이유는 수비력이 강해지면서 공간이 줄어들고, 최전방 공격수의 설 자리가 좁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제로 톱을 처음 성공적으로 사용한 것은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이 지도했던 05/06 시즌 로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로마는 팀의 보물이던 '악마의 재능' 안토니오 카사노를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 보낸 상태였다. 또한 주전 공격수인 빈센초 몬텔라와 새로 이적해 온 샤바니 논다까지 부상을 당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스팔레티가 처음 프란체스코 토티를 원톱으로 배치한 4-2-3-1 포메이션을 선보였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로마가 연승 행진을 달릴거라고 예상하는 팬들은 거의 없었다. 토티는 공격을 시작할 때 항상 하프라인까지 내려와서 볼을 받고 그것을 다시 미드필더들에게 배급하는 플레이를 했다. 지금 시점에서는 그것이 평범한 플레이로 보일지 몰라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기존의 원톱들에게서 보기 어려웠던 낯선 플레이였다.

 

선수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토티는 원터치 패스를 통한 연계 플레이와 킬 패스, 등을 진 상태에서 감각적으로 넣어주는 힐 패스, 몸싸움과 개인기를 이용한 뛰어난 키핑 능력, 강력한 중거리슛을 가진 선수였다. 다만 스피드는 느린 편이고 부상이 잦으며 거친 성격을 가지고 있다. 3을 형성한 선수는 주로 만시니 - 페로타 - 타데이였는데 만시니와 타데이는 측면 포워드나 윙어 정도로 볼 수 있다. 다만 페로타는 창의적인 패스와 빠른 드리블을 주무기로 하는 기술적인 선수라기보다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패스를 받아 다시 연결해주는 연결고리 역할과 공수 밸런스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첫번째 그림은 05/06시즌 로마의 베스트 일레븐이다. 물론 토티가 최전방에서 볼을 잡아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로마는 빌드 업을 시작할 때 두번째 그림처럼 토티가 미드필드 중앙까지 내려왔다. 최전방에서 플레이해야 할 토티가 상대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 라인 사이에서 볼을 받는 사이 아래에 있던 만시니와 페로타, 타데이는 빠르게 전진한다. 이 전술의 핵심은 이렇게 토티와 3미들의 위상이 역전된 상태에서 뒷공간으로 쇄도하는 3미들에게 전달되는 토티의 창의적인 패스에 있다. 만약 토티가 패스하기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면 아퀼라니와 데 로시를 이용하여 볼을 순환시킨다. 수비형 미드필더들과 풀백들은 공격에 참여하면서 볼을 전진시킨다. 아래에 쳐져있던 토티는 다시 전방으로 올라가면서 네번째 그림처럼 볼을 받아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하거나 혹은 다섯번째 그림처럼 상대 수비진을 바깥으로 유인하여 만시니와 타데이에게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로마의 제로톱 전술은 선수들의 능력과 공간 활용 방식이 매우 잘 연결된다. 전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토티의 키핑력과 패싱력, 중거리 슈팅 능력이 100% 활용되었다. 그러나 08/09시즌 이후 페로타와 멕세같은 기존 선수들이 부진하고 메네즈, 밥티스타같은 이적생들이 팀에 녹아들지 못했으피사로, 아퀼라니가 부상을 당하면서 로마는 부진의 늪에 빠진다. 특히나 토티의 노쇠화와 부상은 절대적인 요인이었다. 토티와 같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2003년, 2004년 J리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오카다 다케시는 일본 대표팀에서 혼다 게이스케를 이용한 제로톱을 사용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우승이 목표라고 하는등등 굉장한 자신감을 보이던 오카다는 비슷한 수준의 상대라고 평가되던 카메룬을 1:0, 덴마크를 3:1로 이기면서 수준급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당시 일본의 전술은 톱리스 혹은 5톱 전술이라고 불렸는데 오카다는 4-2-3-1 포메이션과 4-3-3 포메이션같은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위주로 사용하여 전방에 오카자키 신지, 다마다 게이지, 오쿠보 요시토, 혼다 게이스케, 마쓰이 다이스케, 그들 바로 뒤에 엔도 야스히토를 배치해 엔도를 제외한 5명 모두가 공격시에는 포워드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는 수비의 비중이 컸다. 수비시에 전방 5명이 모두 내려와 전방을 비워두고 전원 수비에 참여하는 경우가 빈번했기에 결국은 톱리스 전술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오카다의 전술이 당시 일본이 선택할 수 있었던 카드 중에서는 최상의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당시 일본은 역습시 직선적인 플레이를 통한 득점에 능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수비수들이 터프한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수비도 약하고 압박도 약하고 역습도 약하고 득점력도 약하다. 일본이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패싱 플레이를 강조하는 일본의 축구 스타일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 대표팀은 공격적인 운영을 하면 수비가 안되고 반대로 수비적인 운영을 하면 공격이 안풀리는 문제가 생겼다. 강팀을 상대할 때 수비에 중점을 두면서 몇 번의 공격 찬스를 살릴 필요가 있지만 파저티브 트랜지션 상황에서 소위 뻥축구만을 구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 대표팀은 수비적인 운영을 하더라도 미드필드에서의 패스웍을 바탕으로 어떻게든 상대 진영까지 짧은 패스를 통해 연결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때문에 오카다는 톱리스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수비력을 강화하고, 고질적으로 선수풀이 취약한 최전방 공격수 포지션을 비워두고 짧은 패스를 통한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시도했다. 정확한 킥을 구사하는 엔도와 무회전 프리킥을 장착한 혼다의 세트피스 능력도 주요한 득점 루트가 됐다.

 

레알 마드리드를 지도하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는 맨유의 수석 코치로 더 친숙한 카를로스 퀘이로스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호날두를 이용하여 제로톱(?)을 선보였다.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이후로 출중한 기량을 가진 미드필더, 특히 측면 윙어가 많았다. 측면 자원으로는 호날두와 나니뿐만이 아니라 시망, 콰레스마, 바렐라같은 위협적인 선수들이 있는 반면 최전방 공격수 자원으로는 포스티가, 알메이다처럼 윙어에 비해 자원이 부족했다. 따라서 퀘이로스는 피지컬이 뛰어난 호날두를 센터 포워드로 돌리고 다른 선수를 측면에 투입했으나 호날두는 측면이 아닌 센터에서는 효과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호날두는 대인 돌파 성공률이 그리 높은 선수가 아니며 좁은 공간보다는 넓은 공간에서의 활용성이 큰 선수이기 때문이다. (호날두가 epl에 있었을 때 리그 돌파 성공률 1위는 알렉산더 흘렙이었는데 호날두는 흘렙의 성공률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메시와 비교해서도 상당히 낮은데 드리블 성공률에서 메시는 60%후반을 기록하지만 호날두는 50%초반 정도다.) 이시기의 포르투갈을 짠물 수비와 답답한 공격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물론 퀘이로스는 맨유에서 퍼거슨 감독의 전술적 두뇌 역할을 하면서 호날두를 사용한 제로톱을 효과적으로 구사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전술 능력의 부족이나 호날두의 부진보다는 팀 전체의 문제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밖에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끈 2011/12시즌 바르셀로나와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이끈 2012 유로 스페인도 제로톱의 전형적인 사례로 뽑을 수 있다.

 

지금까지 공간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선수보다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 실질적 포메이션과 선수의 능력 그리고 선수의 역할이 일의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 부분의 변화는 반드시 전체의 변화를 이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다음 글에서는 역습과 프레싱 미디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