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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술,이론

[이론] 잉글랜드식 4-4-2 포메이션 - 알렉스 퍼거슨

※ 먼저 이글은 네이버블로그 (이름난개장수)님의 글을 복사하여 등록하였습니다.

해당 블로그로 이동하시면 정말 좋은글들이 많으니, 가셔서 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wakano4/)

 

 

이번 글에서는 잉글랜드식 4-4-2 포메이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현대 축구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포메이션이 4-4-2 포메이션인 만큼 많은 감독들은 4-4-2 포메이션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축구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4-4-2 포메이션의 시초는 알다시피 1966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알프 램지 감독이 이끈 잉글랜드 대표팀이다. http://blog.naver.com/wakano4/90153276007를 참고하도록 하자. 1950년대 말부터 브라질이 선보인 4-2-4 포메이션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유럽에서는 4-2-4 포메이션이 가장 기본적인 포메이션이 되었다. 하지만 4-2-4 포메이션에서는 네 명의 포워드가 모두 공적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기에 미드필드 싸움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몇몇 팀들은 포워드 중 하나를 미드필더로 내리는 비대칭형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6 월드컵에서 알프 램지 감독은 비대칭형 4-3-3 포메이션을 사용하다가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처음으로 4-4-2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램지가 사용한 4-4-2 포메이션은 미드필더를 다이아몬드 형태로 놓는 포메이션이었다.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스타일스는 잉글랜드의 포메이션은 4-1-3-2 포메이션이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형 4-4-2 포메이션을 4-1-2-1-2, 4-1-3-2, 4-3-1-2 등등의 포메이션으로 부르기도 한다. 차이점은 거의 없으나 예를 들어 4-3-1-2 포메이션에서는 1에 해당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차별화된 역할을 수행하는 포메이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먼저 미드필더 4명을 일렬로 배치하여 큰 성공을 거둔 팀은 70~80년대의 리버풀이었다. 1959년 2부 리그를 전전하고 있던 리버풀을 맡은 빌 샹클리 감독은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며 리버풀을 경쟁력있는 팀으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리버풀은 잉글랜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73년 샹클리는 휘하의 코치들을 모아놓고 잉글랜드 무대를 지배하기 시작한 리버풀이 왜 유럽 무대에서는 그러지 못하는가에 대해 회의를 벌였다. 회의의 결론은 리버풀도 대륙의 강팀들처럼 점유율 축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수비수 네 명을 묶은 수비 라인, 미드필더 네 명을 묶은 미드필더 라인이라는 가상적인 줄을 만든 다음 각각의 줄을 전진시켜 숏패스가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74년에 샹클리가 갑작스럽게 은퇴하고 수석 코치였던 밥 페이즐리가 감독직을 이어 받았다.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강성한 리더십을 고수하던 샹클리와는 달리 페이즐리는 온화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페이즐리는 잉글랜드 리그와 유러피언컵을 휩쓸며 리버풀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잉글랜드의 다른 팀들은 위대한 팀을 모방하면서 잉글랜드식 4-4-2 포메이션이 형성되었다. 잉글랜드 클럽들은 헤이젤 참사 이전까지 유럽 무대를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유러피언컵 76/77 시즌 리버풀 우승, 77/78 시즌 리버풀 우승, 78/79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 우승, 79/80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 우승, 80/81 시즌 리버풀 우승, 81/82 시즌 아스톤 빌라 우승, 83/84 시즌 리버풀 우승)

 

 

라인에 대한 생각은 잉글랜드 감독들에 의해 계속 발전해나갔다. 기본적으로 4명으로 이루어진 라인을 항상 유지해야할 필요가 없는 만큼 4명 중 몇몇 선수에게 전술적인 역할을 부여하여 라인 사이에서 활동하거나 라인을 이동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라인을 이동하는 플레이로 오버래핑을 떠올릴 수 있다. 첫번째 그림은 측면 미드필더가 오버래핑을 통해 포워드 라인으로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두번째 그림은 풀백이 오버래핑을 통해 포워드 라인으로 올라가는 것을 뜻한다. 라인 사이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세번째 그림처럼 두 중앙 미드필더 중 한 선수가 공격수 아래쪽 공간으로 전진했을 때, 다른 한 선수가 아래쪽 공간을 커버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네번째 그림은 포워드 중 한 선수가 아래쪽 공간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거나 공격 전개를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 다섯번째 그림은 센터백이 볼을 몰고 올라오는 플레이를 나타낸다.

 

각각 4명으로 이루어진 2개의 라인과 포워드 2명, 즉 4+4+2가 잉글랜드식 4-4-2 포메이션의 바탕이라면 사키와 카펠로의 4-4-2 포메이션은 그 출발 선상이 조금 다르다. 물론 그들도 라인의 개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4-4-2 포메이션은 강한 압박과 밸런스 유지를 양립시키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음으로 훨씬 더 전체적이고 조직적인 성격을 띈다. 그들의 4-4-2 포메이션은 8명으로 이루어진 블록과 포워드 2명, 즉 8+2에 가깝다.

 

 

이러한 8인 블록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사키이즘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필자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 또한 이러한 전술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퍼거슨 감독은 그만큼 다른 팀의 완성된 전술 철학을 모방하여 자기화하는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왔다. 필자가 생각하는 퍼거슨 감독의 이미지는 고뇌하는 철학자라기보다는 꽤가 많은 여우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74년 이스트 스틸링셔에서 감독을 시작하여 78년부터 에버딘을 맡으면서 감독으로서 두각을 드러낸다. 그는 잠시 스코틀랜드 국가 대표팀을 맡다가 86년에 앳킨슨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는다. 퍼거슨은 첫 시즌에는 11위를 했다가 다음 시즌에는 2위를 하고, 또 다음 시즌에는 경질설에 시달리는등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헤이젤 참사의 징계가 끝나고 92년에 잉글랜드 국내 리그가 EPL로 개편되면서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잉글랜드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당시의 맨유 전술을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공간론적인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일단 우리는 4백을 사용하는 팀이 한쪽 풀백은 전진시키고 다른쪽 풀백과 2명의 센터백으로 3백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는 3.5백이 매우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전술을 알고 있다.

 

 

첫번째 그림처럼 양쪽 풀백이 모두 오버래핑을 자주 나간다면 센터백들은 양쪽에 크게 비워진 공간을 커버해야하는 큰 부담을 갖게 된다. 때문에 두번째 그림처럼 감독들은 2에게 자주 오버래핑을 나가게 하고, 5는 오버래핑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왼쪽 풀백 5에게 오버래핑을 자주 나가게 하는 선택을 했다고 하자. 이것을 표시하면 세번째 그림처럼 나타난다. 여기서 5가 오버래핑을 하여 주로 왼쪽 아웃 사이드에서 활약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왼쪽 윙어인 9를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침투시켜 컴비네이션 플레이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지시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것을 표시하면 네번째 그림이다.

 

 

만약 5가 자주 오버래핑하는 상황에서 중앙 미드필더 8까지 자주 최전방까지 침투한다면 센터백 4에게 할당되는 지역은 굉장히 넓어지게되며 이것은 역습을 당할 때 굉장히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8은 적극적인 전진보다는 아래쪽 공간을 커버하는 홀딩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것을 표시하면 다섯번째 그림이다. 반면 공격 작업을 통해 포워드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고 때에 따라 중거리슛과 같은 공격 옵션을 주기 위해 중앙 미드필더 7은 포워드 바로 아래 공간을 활용하여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가야 한다. 이것을 표시하면 여섯번째 그림이다. 한편 오른쪽 윙어인 6은 9와는 달리 측면 사이드를 이용하여 양질의 크로스를 포워드에게 제공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된다. 이것을 표시하면 일곱번째 그림이다. 10은 6이 제공하는 양질의 크로스를 받아넣는 포쳐 역할을 수행하는 타겟형 스트라이커를, 11은 9와 7의 전진에 호응하여 컴비네이션 플레이를 하면서 공간을 활용하여 공격 작업을 원활하게 하는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기용할 수 있다. 이것을 표시하면 여덟번째 그림이다.

 

여기까지 공간론적으로 타탕하며 합리적인 선택이다.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면 이전 글들을 제대로 이해하고나서 다시 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공간론적 이해만으로 만들어낸 여덟번째 그림의 전술은 퍼거슨 감독이 90년대 당시에 사용했던 전술과 매우 흡사하다.

 

 

전술에 따른 각 포지션에 필요한 능력과 당시에 있었던 선수들을 비교해보면 어떻게 맨유가 90년대에 두번의 더블과 99년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완성된 전술과 그 전술에 적합한 선수를 영입하거나 키워내어 알맞게 배치한 것이 맨유가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약점을 보완하여 변형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든다면 기동력이 부족한 베컴을 위해 게리 네빌에게 조금 더 오버래핑을 자주 하도록하고 대신 좋은 수비력을 보유한 베컴이 네빌의 빈 자리를 커버하여 서로 모자란 부분을 상호 보완하는 것이다.

 

8인 블록 체계가 점차 일반화되자 사이드 체인지 혹은 볼의 순환이라 불리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8인 블록 체계에서는 볼 홀더의 주위 공간에 선수들을 밀집시켜 수적 우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경기 진행 양상에 따라 선수들이 밀집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발생하게 되고, 상대의 압박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선수들이 밀집하지 않은 공간으로 빠르게 볼을 이동시켜야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첫번째 그림은 선수가 밀집된 공간과 밀집되지 않은 공간을 표시한 것이다. 볼의 순환 개념에 따라 선수가 밀집되지 않은 공간으로 빠르게 볼을 이동시켜야 상대의 압박에 효과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 퍼거슨은 실질적으로 볼의 순환에 핵심 역할을 하는 B의 자리에 스콜스를 배치했다. 실제로 스콜스가 선발 출장한 경기들을 살펴보면 좌우 측면으로 정교하게 벌려주는 패스가 굉장히 많다. 링크 업 플레이와 사이드 체인지 패스에 있어서만큼은 스콜스가 독보적인 존재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페널티 박스 내로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킬 패스는 자주 나오지 않았다. 스콜스는 자신이 직접 어시스트하는 것보다 베컴의 어시스트를 어시스트하는 것이 팀 전체적으로 더 나았기 때문이다.

 

볼의 순환 개념에 따라 오버래핑을 하는 풀백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 풀백이 오버래핑하면 반대편 풀백은 오버래핑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경기 진행 양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3.5백을 사용하게 된다. 물론 어느쪽 풀백이 더 자주 공격적으로 전진하느냐에 따른 빈도의 차이는 여전히 있다. 마찬가지로 중앙 미드필더도 한명이 전진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한명이 아래쪽을 커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로이 킨이 전진하면 스콜스가 아래쪽을 커버하는 식이다. 실제로 로이 킨은 공격에서도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스콜스의 수비력도 괜찮은 편이다. 2000년대 초중반 맨유의 라이벌로 떠올랐던 아르센 벵거 감독의 아스날에서도 이러한 조합이 두드러지는데 비에이라 - 질베르투 실바, 파브레가스 - 플라미니 조합 역시 그러한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 포메이션과 플랫형 4-4-2 포메이션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 미드필더의 구성에 따라 4-4-2 포메이션을 분류해보면 위와 같은 4개의 전술로 나눠볼 수 있다. 첫번째 그림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 포메이션으로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가 확연히 분리된다. 두번째 그림은 좌우가 대칭되는 형태다. 세번째 그림과 네번째 그림은 중앙 미드필더들의 전진 비율이 달랐을 경우를 나타낸다.

 

 

 

위 그림들은 2011-2012 UEFA 챔피언스 리그 기술 분석서에서 순서대로 벤피카, 레버쿠젠 , CSKA 모스크바 , 바젤의 전술을 분석한 것이다. 그림들을 비교해가며 보길 바란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맨유는 다양한 공격 루트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드리블을 주로하는 긱스와 크로스를 주로하는 베컴의 조합은 측면에서 기회를 만들었고, 스콜스와 킨은 원활히 움직이며 그들의 공격 작업을 도왔다.

 

 

첫번째 그림은 90년대 맨유의 전술 메커니즘이다. 두번째 그림은 베컴의 장거리 크로스를 통해 빠른 역습을 가져가는 모습이다. 세번째 그림은 긱스의 드리블, 스콜스의 링크 업, 베컴의 크로스가 조합되어 공격하는 모습이다. 네번째 그림은 스콜스의 링크 업과 긱스의 드리블, 어윈의 오버래핑이 조합되는 모습이다. 다섯번째 그림은 네빌의 오버래핑이다.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공격 루트를 그려볼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90년대 퍼거슨이 처음 시도한 전술은 측면 역습의 비중이 매우 높은 전술이었다. 그러나 중앙과 측면 공격 어느 쪽이나 가능한 상태에서 측면을 선택하는 것과 측면 공격만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측면을 선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잉글랜드 해설가들은 감자칩을 한입 베어물었을 때 감자칩이 빠르게 갈라지는 모습에 착안하여 맨유의 전술을 칩카운터라고 부르기도 했다. 측면 윙어가 주도하는 측면 위주의 공격 루트, 그들을 돕는 다재다능한 중앙 미드필더, 최전방 공격수의 더미 플레이(수비수를 유인하는 움직임), 양쪽 풀백 모두가 최전방까지 오버래핑하는 것은 자제하는 선택은 epl의 많은 팀들에 의해 차용되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이후 4-2-3-1 포메이션과 3-4-1-2 포메이션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활용과 강한 압박이 양립하는 전술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첫번째 그림은 4-4-2포메이션의 3단계 라인과 그 사이에 있는 공간을 표시한 것이다. 두번째 그림처럼 수비 라인을 전문적으로 보호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지 않는 4-4-2 포메이션은 구조상 수비시 2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모두 내려서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방어하게 되는데 이로인해 공수 전환 이후 공간2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맨유는 기존 공격 루트 중 상당수를 활용할 수 없게 되면서 측면을 통한 단조로운 공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되고만다.

 

2004년 웨인 루니가 맨유에 입단하면서 퍼거슨은 아스날의 베르캄프처럼 루니를 확실히 반 니스텔루이의 아래쪽에 배치하는 4-4-1-1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공간2를 활용하고 싶은 퍼거슨의 의중이 옅보이는 배치였다. 그러나 퍼거슨은 루니에게 프리롤을 부여하는 극단적인 처방까지 내놓지만 맨유의 세대 교체 시기와 맞물려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